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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KIFU / DRAWING ARCHIVE / 15 STUDIES

Before
the form.

이름을 붙이기 전의 선.
형태가 되기 전의 감각.

목탄, 낙서, 지워진 흔적에서 시작하는 조형 연구.
디지털 콘셉트 아카이브입니다. 소재 구상은 향후 제작을 위한 계획이며 실물 제작 기록과 구분합니다.

15 studies / 이미지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진화했는데, 더 좁아졌다

소재 구상 · 목탄, 흑연, 왁스 크레용, 젯소 / 리넨 캔버스

공룡과 미래인간은 서로 다른 시대의 몸으로 같은 화면에 들어선다. 한쪽의 등 위 돌기와 다른 쪽의 불룩하게 쌓인 신체 구조는 낯선 닮음을 만든다. 오래된 몸과 업그레이드된 몸의 대비는 곧 단순한 과거와 미래의 구분을 벗어난다. 크기와 기능을 늘리는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제약이 두 존재를 같은 놀이판 안에 묶어 놓는다.

불완전한 경로와 압축된 공간은 경쟁의 규칙을 연상시키지만, 무엇을 얻으면 이기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축적이 커질수록 몸은 둔해지고 움직일 자리가 줄어드는 역설이 드러난다. 성장과 효율을 진보의 기준으로 삼는 현대사회를 향한 풍자는 선언보다 두 존재의 어색한 공존에서 발생한다. 아이의 놀이처럼 시작된 화면은 더 나아지는 삶과 더 커지는 몸이 같은 뜻인지 묻게 한다.

이름 이전의 움직임

소재 구상 · 압축 목탄, 흑연, 왁스 크레용 / 면지

이 작업에서 선은 대상을 설명하는 윤곽이 아니라, 아직 정해지지 않은 방향을 시험하는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눌러 쌓인 검은 덩어리와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가느다란 흔적은 서로 다른 속도를 가진다. 화면은 하나의 중심으로 모이는 듯하다가도, 사소한 이탈과 끊김 때문에 끝내 닫힌 형태가 되지 않는다.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시선을 오래 붙잡는다.

희미하게 지워진 자국과 짧은 색선은 완성된 형상보다 선택의 과정을 드러낸다. 무엇을 그렸는지 묻기 전에, 어떤 힘이 머물렀고 어디에서 힘이 풀렸는지 살펴보게 하는 것이다. 넓게 남겨진 여백은 배경에 그치지 않고 다음 움직임의 가능성을 보존한다. 작품은 이름을 붙여 이해하려는 우리의 습관을 잠시 유예하며, 알아보기 이전의 감각을 제안한다.

부드러운 저항

소재 구상 · 목탄, 백색 초크, 왁스 크레용 / 리넨 캔버스

세로로 응축된 흔적은 곧게 올라서려는 힘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 주변의 흐트러진 선과 밝은 자국은 이 방향을 계속 비껴 간다. 짙은 부분과 거의 닿지 않은 부분의 차이는 작은 몸짓에도 여러 압력이 공존함을 보여준다. 작품은 균형 잡힌 결과를 제시하기보다 균형을 찾아가는 동안 생기는 어긋남을 화면의 중심에 놓는다.

리넨을 바탕으로 한 소재 구상은 이러한 긴장을 촉각적으로 읽게 한다. 선은 매끄럽게 통과하는 대신 표면에 걸리고, 끊기며, 다시 이어지는 듯 보인다. 여기서 저항은 극복해야 할 장애라기보다 형태를 바꾸는 상대에 가깝다. 고치지 않은 동작과 넓게 비워둔 자리는 서툶을 실패로 판단하지 않고, 다른 리듬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바라보게 한다.

결을 거슬러

소재 구상 · 흑연, 왁스 크레용 / 자작나무 합판

낮게 이어지는 선의 흐름과 불균일하게 뭉친 흔적은 하나의 길을 암시하면서도 일정한 진행을 거부한다. 자작나무 합판을 염두에 둔 화면에서 바탕의 결은 수동적인 지지체가 아니라 움직임에 관여하는 요소로 읽힌다. 짧은 붉은 흔적 역시 시선을 명확히 인도하는 표식이 되기보다, 진행 중에 생긴 머뭇거림처럼 남아 있다.

같은 곳을 되짚는 선은 효율적인 이동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바로 그 반복 때문에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밀도와 간격이 생겨난다. 작품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일보다 움직임이 표면과 만나는 순간에 주목한다. 결을 따른다는 것과 거스른다는 것은 서로 분리된 선택이 아니라, 한 동작 안에서 번갈아 일어나는 작은 협상일 수 있다.

바닥의 기억

소재 구상 · 목탄, 백색 초크, 황토색 안료 / 콘크리트 패널

이 화면은 바닥을 일상의 움직임을 받아들이는 기록의 장소로 바라본다. 흐린 곡선과 짙은 얼룩, 잠깐 남은 색의 흔적은 어떤 사건을 구체적으로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 지나간 놀이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구상된 콘크리트 표면의 미세한 차이는 흔적마다 서로 다른 잔존 시간을 부여하는 듯하다.

보는 사람은 누구의 발걸음인지, 무엇을 그리던 자리인지 알아내려 하지만 화면은 충분한 단서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작품의 여백을 만든다. 기억은 사건을 온전히 보관하는 기록이라기보다 남아 있는 조각을 지금의 시선으로 다시 엮는 일에 가깝다. 바닥이라는 낮고 평범한 장소는 그 불완전한 기억을 오래 품는 표면으로 바뀐다.

멈춤 사이

소재 구상 · 흑연, 압축 목탄, 적갈색 크레용 / 면지

가로로 길게 열린 화면에서 중요한 것은 선의 양보다 선과 선 사이에 놓인 거리다. 서로 다른 밀도의 흔적들은 하나의 연속된 서사를 이루지 않은 채 떨어져 있다. 시선은 짙은 부분에서 멈추고, 옅은 부분을 더듬다가, 아무것도 없는 구간을 통과한다. 같은 화면 안에서도 보는 속도가 일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러한 간격은 소리 사이의 침묵이나 대화 중의 망설임처럼 읽을 수 있다. 비어 있는 구간은 내용을 담지 못한 자리가 아니라 앞선 흔적을 되돌아보게 하고 다음 흔적을 기다리게 하는 시간이다. 작품은 더 많은 것으로 채워야만 풍부해진다는 생각을 뒤집는다. 서로 이어지지 않는 것들이 거리를 유지한 채 함께 있을 때 생기는 관계를 보여준다.

거의 들리지 않는

소재 구상 · 백색 오일 파스텔, 초크, 청색 안료 / 흑색 목판

어두운 바탕 위의 밝은 선은 강한 대비를 가지면서도 안정된 형상을 이루지 못한다. 어떤 자국은 선명하게 앞으로 나오고, 어떤 자국은 표면 안으로 다시 잠기는 듯하다. 흑색 목판과 오일 파스텔이라는 소재 구상은 이 드러남과 사라짐을 단순한 밝기의 차이 이상으로 느끼게 한다. 하나의 몸짓 안에도 망설임과 단호함이 공존한다.

화면을 오래 볼수록 처음에는 지나쳤던 옅은 긁힘과 작은 색의 개입이 눈에 들어온다. 이때 주목받는 것은 가장 크게 말하는 흔적만이 아니다. 작품은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실패한 표현으로 취급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야 만날 수 있는 다른 강도로 제시한다. 제목의 목소리는 실제 소리라기보다 우리가 무엇에 귀를 기울이고 무엇을 놓치는지 묻는 비유다.

표면 아래

소재 구상 · 목탄, 왁스 크레용, 아크릴, 젯소 / 캔버스

겹쳐진 색과 덧그은 선 사이에서 화면의 앞과 뒤는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가려진 듯했던 흔적이 밝은 층 너머로 나타나고, 새로 놓인 자국은 이전의 흐름을 끊어 놓는다. 완성된 한 번의 결정처럼 보이는 표면이 사실은 여러 선택의 공존 상태라는 점이 드러난다. 화면은 결과를 보여주는 동시에 수정의 시간을 품는다.

여기서 덮어쓰기는 과거를 완전히 지우는 행위가 아니다. 바뀐 결정은 이전 흔적과 마찰하며 현재의 형태를 만든다. 젯소와 색층, 목탄과 크레용을 함께 고려한 소재 구상도 이러한 시간의 차이를 뒷받침한다. 작품을 하나의 정답으로 읽기보다, 끝났다고 생각한 선택들이 다시 말을 걸어오는 열린 표면으로 바라볼 수 있다.

지나가는 선

소재 구상 · 청색 왁스 크레용, 흑연, 백색 초크 / 시멘트 패널

넓게 펼쳐진 바탕 위에서 청색 선은 방향을 가진 듯하지만 곧 주저하고 꺾이며 일정한 흐름에서 벗어난다. 주변에 흩어진 흔적은 선이 지나간 시간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화면은 출발과 도착을 분명히 제시하지 않으면서도 이동의 감각을 남긴다. 우리가 따라가는 것은 경로의 정보가 아니라 압력과 마찰이 바뀌는 리듬이다.

바닥을 연상시키는 소재 구상은 이 움직임을 일상의 몸과 연결한다. 이동에는 늘 표면의 저항과 거리의 부담이 따르며, 열려 있는 공간도 누구에게나 같은 방식으로 주어지지는 않는다. 선이 멈추거나 되돌아가는 지점은 그 조건을 생각하게 한다. 작품은 자유로운 낙서의 가벼움 속에, 계속 움직여야 한다는 요구와 잠시 머무를 가능성을 함께 놓는다.

간신히 함께

소재 구상 · 압축 목탄, 흑연, 적색 크레용, 백색 안료 / 두꺼운 면지

검은 중심부는 단단한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읽으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선들의 불안정한 집합에 가깝다. 강하게 눌린 흔적과 가느다란 긁힘, 짧게 끼어드는 색이 동일한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 이 밀도는 조화로운 합의의 결과라기보다 충돌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로 느껴진다.

주변으로 빠져나가는 선과 수정의 자국은 중심이 완전히 닫히는 것을 막는다. 함께 있다는 것은 반드시 같은 방향을 향하거나 차이를 없애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여기서 가능해진다. 작품은 응집을 안정의 상징으로만 제시하지 않는다. 서로를 붙들면서도 각자의 움직임을 잃지 않으려는 관계,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긴장을 화면에 남긴다.

불확실한 생물

소재 구상 · 목탄, 흑연, 청색 크레용 / 면지

등 위의 돌기와 낮게 늘어진 몸, 꼬리를 떠올리게 하는 긴 흔적만으로 공룡은 잠시 모습을 얻는다. 그러나 윤곽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고, 몸의 일부는 낙서의 흔들림 안으로 풀어진다. 이 생물은 해부학적으로 정확한 복원이라기보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손의 움직임이 함께 만든 가능성에 가깝다.

작품은 얼마나 적은 단서로 대상을 알아보게 되는지 질문한다. 보는 사람은 익숙한 이름을 붙이는 순간 비어 있는 부분을 스스로 채우지만, 불완전한 선은 그 확신을 다시 흔든다. 기억 속 사물은 언제나 온전한 모습으로 보존되는 것이 아니다. 잊힌 부분과 과장된 부분, 나중에 보태진 감각이 섞여 낯설면서도 친근한 몸을 만든다.

거의 둘인 것

소재 구상 · 목탄, 적색 왁스 크레용, 황토색 안료 / 리넨 캔버스

굵게 휘는 움직임과 그 뒤에 남은 옅은 흔적은 두 존재를 암시하지만, 어디에서 하나가 끝나고 다른 하나가 시작되는지 분명하지 않다. 색선이 개입한 중심부에서는 몸의 윤곽과 이동의 경로가 서로 바뀌어 읽힌다. 충돌하는 장면인지 함께 노는 장면인지 결정하기 어려운 점이 이 작업의 긴장을 만든다.

낙서의 중첩은 개별 형상을 흐리게 하는 동시에 둘 사이의 관계를 더 강하게 드러낸다. 대상을 나누어 알아보는 대신, 만남 때문에 각자의 형태가 어떻게 바뀌는지 보게 하는 것이다. 작품은 관계를 완성된 두 개체 사이에 놓이는 선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를 만나고 침범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몸과 경계가 생겨나는 순간을 제안한다.

흔적만 남아서

소재 구상 · 백색 초크, 목탄, 청색 크레용 / 콘크리트 패널

이 작업에서 공룡은 직접 등장하기보다 지나간 자리를 통해 상상된다. 발자국 같기도 하고 지워진 초크의 무리 같기도 한 흔적, 길게 휘는 잔상은 하나의 몸을 불러오지만 끝내 확정하지 않는다. 구상된 바닥의 질감은 흔적을 선명한 증거로 보존하기보다 조금씩 흩어지고 닳는 상태로 보여준다.

보는 사람은 없는 몸을 복원하려 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생물의 모습과 움직임을 화면에 보탠다. 이때 부재는 부족함이 아니라 상상이 개입할 수 있는 자리가 된다. 작품은 기억과 관찰이 언제나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드러낸다. 남은 것을 읽는 일은 이미 있었던 사실을 찾는 동시에, 지금의 시선으로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행위다.

이름을 얻기 전

소재 구상 · 백색 오일 파스텔, 흑연, 적갈색 안료 / 흑색 목판

검은 바탕을 가로지르는 밝은 선은 길게 뻗은 생물의 몸을 암시한다. 그러나 목과 몸통, 꼬리로 읽히던 부분은 곧 독립적인 굴곡과 매듭으로 흩어진다. 공룡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과 그 이름이 더 이상 충분하지 않은 순간이 한 화면 안에서 교차한다. 어둠은 장면의 배경보다 윤곽을 불확실하게 하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불완전한 형체는 낯설지만 위협적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어린 날의 낙서처럼,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친근함을 지닌다. 작품은 인식과 감각 사이의 짧은 간격에 머문다. 빠르게 분류하고 이름 붙이는 대신 형태가 바뀌는 시간을 허용할 때, 익숙한 대상도 다른 방식으로 만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남겨두는 일

소재 구상 · 목탄, 흑연, 황토색 초크 / 면지

가느다란 줄기와 작은 받침은 넓은 공간에 비해 아주 적은 자리를 차지한다. 주변을 둘러싼 불완전한 경계는 표본을 보관하는 장치를 떠올리게 하지만, 무엇을 보호하거나 남기려는지는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 시선은 작은 형태와 그 바깥의 빈 자리 사이를 오가며, 대상의 크기와 머무는 시간 사이에 반드시 비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님을 느끼게 된다.

이 작업에서 보존은 사물을 변하지 않게 붙잡는 일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 앞에 섰던 순간의 관심, 사라질 것을 바라보는 태도 역시 남겨야 할 대상으로 읽힌다. 무게 있는 받침과 연약한 줄기의 대비는 이러한 돌봄의 불균형을 드러낸다. 작품은 채워진 부분만큼 비워진 부분을 중요하게 다루며, 오래 바라보는 행위 자체를 하나의 관계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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